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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개인주의자 선언 - 책 리뷰, 문유석 판사

일반적인 개인주의에는 부정적인 언어들이 담겨져 있다. 우리 특히 대한민국 사회는 집단주의 사회이기 때문이다. 개인의 이익보다는 집단의 이익, 사회의 이익, 그리고 국가의 이익이 우선시 된 사회, 그렇게 우리는 희생되고 당연 시 되고 그렇게 또 새뇌되어 간다. 

 

이 책 전체에 걸쳐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개인주의자인 문유석작가의 눈으로 본 세상의 여러 얼굴들이다. 사회의 부조리함, 폭력, 타인의 이타적 모습 등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빛과 그림자를 가감 없이 묘사한다. 그는 빛만 비추는 것이 아닌 그림자도 보여줄 때 빛의 선명함이 드러난다는 탁월한 묘사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개인주의자로 살아온 모습, 그가 지켜봐 온 타인의 모습,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의 모습으로 시각을 점차 넓혀가며 담담하고 따뜻한 감정으로, 때론 냉철한 어조로 글을 전개해 나간다.

 

 개인들의 차이를 인식하는 것이 공존과 타협의 시작이라는 역발상은 집단주의적 문화 안에서 각기 다른 개인의 자유와 선택, 개성을 억눌러온 사람들에게 개인주의자로서 당당하게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책의 서두에서 작가는 다소 과격하지만 솔직하게 인간혐오의 감정을 서술한다. 회식자리나 행사가 싫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자리가 불편하다. 하지만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과 연대해야 하고 함께 살아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역설한다. 개인주의자로 살아가면서 타인을 존중하고 자신의 자유를 자제하면서도 타인과 연대해야 하는 이유, 이 책은 그 치열한 고민의 결과물이다.

 

책을 읽으며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곱씹어볼 수록 그 풍미를 느낄 수 있는 구절들이 참 많았다. 특히 행복에 관한 이야기 중, ‘행복은 기쁨의 강도가 아닌 빈도이며 사람들은 인관과의 관계 속에서 가장 많은 쾌감을 느낀다는 구절이 인상 깊었다. 흔히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한다. 엄청난 운이나 기회가 와도 기쁨은 잠시뿐, 그 상황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렇기에 엄청나게 큰 행복보다 자잘하고 끊이지 않는 즐거움에서 더 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인간관계로 인해 힘들어하기도 하지만 정작 우리가 힘들어하는 이유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고 소중히 여기기 때문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힘들고 지칠 때 누군가를 통해 위안을 받고 혼자 있을 때보다 함께할 때 더 큰 기쁨을 누리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강요 받고, 복종의 관계가 지배적인 집단주의 사회에서는 오히려 인간관계가 불행의 원천이 된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전근대적인 집단주의 문화에서 벗어나 합리적 개인주의를 추구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며,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간섭하지 않고 배려하는 성숙한 개인주의 문화 말이다. 참 공감이 되는 말이었다. 개인은 집단의 의견에 쉽게 휘둘리며, 다수의 의견과 반대되는 자신의 의견을 말할 때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판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답게, 늘 합리적 의심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느껴졌다. 증거 없이 함부로 믿지 않는 태도, 사실 이 태도는 판사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져야 할 태도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 상에서 근거 없이 떠도는 소문이나 한 사람의 일방적 주장만이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조건 의심부터 하라는 것이 아니다. ‘합리적 의심을 가지는 판사 문유석의 태도는 이 책 전체에 걸쳐 녹아 들어있다. 작가는 미국 보스턴 지역에서 생활하면서 불친절한 서비스,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짜증내고,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그러나 단순 비판에서 그치지 않고 왜 이들이 이렇게 행동하는 가를 생각하면서 이 또한 노동자들의 권리라 생각하고, 누구에게나 먹고 살 기회가 주어지는 기회의 땅 미국을 떠올린다. 그는 합리적 의심을 통해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다양한 사고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판사는 정의롭고, 타인의 심정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이타적일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도 판사이기 이전에 한 개인이었다. 개인으로서 그는 어떤 정의감에 불타기 보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냈다. 나와 굉장히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처음에 가졌던 거리감과 경외심은 점차 줄어들었다. ‘인정투쟁의 소용돌이로 묘사한 SNS에 관한 글은 평소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상당히 공통점이 많았다. “글이란 묘해서 어떤 목적이 앞서거나 읽는 이에게 어떻게 보이고 싶은 욕구가 앞서는 듯 보이는 글은 감흥을 주긴 어렵다. 진짜가 아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 이 구절을 늘 곱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무엇을 위해 글을 쓰는지, 이 글이 나를 위한 글인지를 말이다.

  작가는 자신이 이기적이고 무심하다고 이야기 하지만 내가 느낀 것은 누구보다 타인의 일에, 사회의 구조적 문제점들에 관심이 많다는 것이었다. 딸을 잃은 어머니를 보고 저도 모르게 함께 찾는 모습, 가정폭력을 증언해야 하는 어린 아이에 대한 배려 등의 따뜻한 마음뿐 아니라 주변의 어려운 현실에 관심을 가지는 태도도 느껴졌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말미에서 합리적 개인으로서 대화하고 타협하고, 연대하는 자세가 필요함을 역설한다. 보다 나은 사회를 위해 나서야 하는 것은 바로 개인이라는 것을.

 

1부 만국의 개인주의자여, 싫은 건 싫다고 말하라

나라는 레고 조각
링에 올라야 할 선수는 바로 당신, 개인이다
우리가 더 불행한 이유
마왕 혹은 개인주의자의 죽음
인정투쟁의 소용돌이, SNS
자기계발의 함정
광장에 내걸린 밀실
행복도 과학이다
개인주의자의 소소한 행복
나는 사기의 공범이었을까
전국 수석의 기억
개천의 용들은 멸종되는가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88학번
20년 만에 돌아온 신림동 고시촌

2부 타인의 발견

변한 건 세대가 아니라 시대다
우리 이웃들이 겪는 현실
필리핀 법관의 눈물
아무리 사실이라 믿어도 함부로 말해선 안 된다
말이 흉기다
인천의 비극
증인에 대한 예의
국가가 갖출 예의
딸 잃은 아비를 스스로 죽게 할 순 없다
문학의 힘
실제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
장그래에게 기회를!
조정 달인의 비결
서른아홉 살 인턴
‘머니볼’로 구성한 어벤저스 군단
우리가 공동구매할 미래

3부 세상의 불편한 진실과 마주하기

진실은 불편하다
정답 없는 세상
좌우자판기를 철거해야 하는 이유
조폭의 의리와 시민의 윤리
사회를 묶어내는 최소한의 가치―케임브리지 다이어리 1
필라델피아 한낮의 풍경―케임브리지 다이어리 2
무지라는 이름의 야수
문명과 폭력
슬픈 이스탄불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 나는 아메드다
우리가 참조할 모델사회는 어디일까
지상천국은 존재하는가
담대한 낙관주의자들이 꿈꾸는 대담한 상상
강한 책임을 기꺼이 질 수 있는 가치관
낯선 것에 대한 공포와 성숙한 사회

에필로그_우리가 잃은 것들